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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여성주의분자생물학’을 주장하고 싶어요 (G. 김혜순 시인)


“나는 저 깊은 곳, 아니면 저 높은 곳, 이곳과 연결된 그곳들을 통과하는 무한한 존재다. 수레바퀴다. 나는 나만이 아닌 무수한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혜순 시인의 아시아 여행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 에서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여자짐승아시아하기』 라니. 어떠신가요? 김혜순 시인은 시를 쓴다고 하지 않고, 시를 한다고 말을 하고요. 자신의 시는 여자하기와 짐승하기라는 끝없는 ‘하기’의 작용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연결’을 이야기하죠. 오늘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는요. 김혜순 시인을 모시고 이야기 나눕니다. 어렵게 모신 만큼 우리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의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김혜순 편> 오은 : 출연 요청을 드렸을 때 고민을 하셨잖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김혜순 : 제 목소리가 인터넷 상에 남아 떠돌아다니는 게 싫고요. 구술언어, 입말은 사라지는 게 절대적 매력인데 그걸 다시 듣다니, 하는 고민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렇지만 오은 시인이 있고, 출판사에서 자꾸만 나가보라고 해서 나왔습니다. 오은 : 제가 <책읽아웃>에서 ‘불현듯’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단어를 「코끼리 부인의 답장」의 구절 “다시 또 얼마나 숨 막고 기다려야/ 앙다문 입술 밖으로 불현듯/ 불멸의 상아가 치솟게 되는지”에서 보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이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것과 마찬가지예요. 김혜순 : 처음 듣는 얘기예요.(웃음) 오은 : 지난 6월, 『죽음의 자서전』 으로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청취자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이 문학상은 세계적 권위의 상으로, 김혜순 시인이 아시아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그런데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다고요? 김혜순 : 내가 상을 받을 것임을 예측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잖아요. 최종후보 네 명을 선정해서 수상발표 전날 시 낭독회를 하게 했고요. 다음날 발표를 했는데요. 예상할 수 없었어요. 오은 : 더욱이 아시아 문학에 상이 수여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거죠? 김혜순 : 그렇죠. 국제 부문의 상이라 해도 아시아인이 아니라 백인들만의 ‘국제’죠. 오은 : 최근에도 여행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은 여행을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집을 나선다는 것이 불편을 감수하는 일인데 그럼에도 움직이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김혜순 : 일 때문에 여행을 많이 했고요. 그것 외에 자발적으로 여행을 가게 되는 건 주로 아시아예요. 그래서 『여자짐승아시아하기』 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죠. 오은 : 그 외에 여유가 있을 때 즐겨 하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김혜순 : 여유가 생기면 심심해서 시를 써요. 시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 같아요. 여유가 없으면 여유를 만들어서 진공의 시간이 왔을 때 쓰게 되죠. 오은 : 1979년 <문학과지성>에 시로 등단하셨으니까 시를 쓴지 꼭 40년이 되셨습니다. 40년이란 시간을 실감하고 계신가요? 내가 이렇게 오래 썼다니, 느껴질 때가 있나요? 김혜순 : 없어요. 오은 시인이나 저나 똑같이 2019년에 도착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돌아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 질문을 올해 많이 받았거든요. 또 사람들이 제게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기도 하는데요. 어디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돌아보지 않으니까요. 저 스스로에게도 기억이 온전하게 존재하는가, 또는 기억이라는 것이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많이 해봐요. 얼마나 경험을 왜곡하고 살고 있을까 생각도 하기 때문에 무엇을 돌아보고, 그것을 상찬하고, 몇 주년을 축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오은 : 일전에 저희 방송에 시인이 되고 싶은 22세 청년으로부터 사연이 온 적이 있어요. 부모님은 반대를 한다고 하는데요. 이런 분들께 선생님은 어떤 얘기를 해주시나요? 김혜순 : 시가 직업이 아니죠. 시가 생업이나 직업이 되는 경우는 전 세계 시인 중에서도 거의 못 봤어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시인이라고 자신을 칭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신화처럼 여기는 것이에요. 우울하고 불행하고 실패한 신화를 꾸미는 것. 시인 아닌 사람도 우울하고 불행하고 실패하거든요.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좋아하는 옛날 시인들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그것은 후세 사람들이 만든 거죠. 그들도 먹고 사는 일에 급급했어요. 내가 시인이 되어야 하는데 직업도 안 구하고 살겠다는 것은 맞지 않아요. 시는 여유가 있을 때 쓰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려면 자신의 일과 병행하는 여유의 시간에 시를 만나려고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요. 오은 : 선생님은 시를 ‘쓴다’고 하지 않고 시를 ‘한다’고 하시잖아요. ‘하다’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들려주세요. 김혜순 : 저도 쓴다고 해요. 시라는 장르 밖에서, 책상에 앉아 시를 적는 행위는 우리 모두 쓴다고 하잖아요. 제가 시를 한다고 하는 것은 시 내부에서의 움직임을 지칭하는 얘기죠. 시인들, 특히 남성 속 포지션을 가진 시인들의 시를 보면 대자아가 나타나서 대상과 자기를 동일시 하면서 내려다보거나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때처럼 대상에 시각만을 투여해서 쓰다듬듯 관찰을 해놓는, 그런 대문자 시인의 자아를 내세우는 것을 볼 때가 있어요. 한편 그것의 대립항에 있는 여성들의 시를 보면 시 안에서 본인이 무엇을 해요. 움직이고, 고백하고, 언어를 가지고 유희하고요. 그렇게 여성 화자 스스로 움직여가는 것을 일컬어 시 한다고 말을 했고요. 그런 언술적 특징에 이름을 붙여본 건데 이 말을 한지는 아주 오래 됐어요. 오은 : 이쯤에서 김혜순 시인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자, 소개 나갑니다. “시 하는, 여성 하는, 시인들의 시인. 키가 작고 병약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까지 외갓집에서 자랐는데 서점을 하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마음껏 책을 읽으며,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책을 꼭 안아주면서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어떤 날, 아파서 학교에는 가지 못하고 외할머니의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데 이 세상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루에 비치던 햇살과 한낮의 고요함, 그 광경이 어린 김혜순을 시 세계로 이끌었다. 시인이 되고 나서는 덜 아프게 되었다. 대학 졸업 2년 뒤인 1979년 <문학과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체」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출판사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했다. 출판사 편집자 시절, 전두환 시대였던 그때, 책을 내기 전에 반드시 서울시청에 가서 검열을 받아야 했는데 책을 가제본 해 시청에 가지고 가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마치 출판사 사무실에서처럼 모여 앉아 출판할 수 없는 글자들과 페이지 위에 검은 콜타르를 칠해서 돌려주었다. 책의 죽음을 나르던 시절이다. 이 시절을 경험하며 그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시인의 안에선 늘 시가 끓어 오른다. 쓰지 않고는 나 자신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출산한 다음날도 시를 써야 했다. 시를 쓰는 순간은 슬픔이 마렵다고 해야 할 정도로 슬픔을 느낀다. 그의 시는 결국 몸 전체로 쓰는 것, 몸 속에서 언어를 굴리고 있다가 꺼내 쓰는 것이다. 시 속에서 내가 죽을 것을 목격하는 것이다. 퇴고는 잘 하지 않는다. 리듬이 죽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김수영 만큼 영향을 끼친 시인은 없었다는 김혜순.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매번 다르게 답한다. 시는 설명하지 않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렇다. 가장 애착이 가는 시집은 늘 마지막 시집이다. 슬리퍼를 신고 가까운 극장에 가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영화가 될 수 없는 소설들을 좋아한다.” 김혜순 : 누가 너무나 저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냈네요. 오은 : 출산 다음에도 시를 써야 했다고요. 슬펐기 때문인가요? 김혜순 : 「딸을 낳던 날의 기억」이라는 시를 쓴 기억이 저한테 있는데요. 출산 중에 잠시 의식이 없던 때가 있었어요. 긴 산통을 겪는데 꿈을 꿨어요. 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때는 살아계셨는데요. 꿈에 두 분이 앉아 계시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셔서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재롱을 부리라고 강요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제가 아이를 낳는 것이 굉장한 조상을 낳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때 시를 한 편 쓴 거예요. 오은 : 시를 읽을 때, 쓸 때, 가르칠 때 김혜순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김혜순 : 시를 쓸 때는 제 이름을 버리죠. 김혜순은 없죠. 돼지나 개나 새처럼 이름 없는 몸뚱이로 써요. 그렇지만 읽을 때는 굉장한 시선으로 읽어요. 시를 읽고 학생들에게 그 시를 얘기할 때가 있기 때문에 직업 중독 현상이 생기는 걸 느끼면서 읽어요. 오은 : 그럼 읽을 때도 완벽하게 독자의 상태가 아니겠네요? 김혜순 : 그렇죠. 그리고 이 시에서 시인이 가장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얽었으며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뼈대는 어떤 것인가를 파악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얘기하려고 해요. 그렇지만 외국 시를 읽을 때는 편안하게 읽어요. 오은 : 한편 선생님이 되게 무서운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있잖아요. 사실은 아니죠? 김혜순 : 제가 볼 때는 그 학생들이 자기 신화를 만든 것 같아요. 어떤 학생이, 선배들에게 들었는데 제가 시 수업 시간에 학생의 시를 찢어서 다른 학생은 시를 코팅해서 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못 찢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시를 찢어본 적도 없고요. 학생이 보는 앞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한 적이 없어요. 그런 소문이 이 외에도 참 많아요. 그래서 이것이 그들이 신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은 : 이제 신작 『여자짐승아시아하기』 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난 7월에 출간된 산문집인데요. 선생님께서 직접 소개해주세요. 김혜순 : 여자는 남자, 짐승은 인간, 아시아는 서구 세계의 대척점에 있잖아요. 그런 변방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소수문학하기랄까요. 그 지점에서 다양성을 찾아보고자 했어요. 시를 쓸 때 왜 돼지, 곰, 쥐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왜 언제나 여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말을 하고 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아시아를 여행한 거죠.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사실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짐승이라는 것, 끝끝내 여자가 된다는 것을 제일 모르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어요. 외국에 가서 오래 지내다 보면 제가 아시아인이라는 걸 잊어버려요. 그러다 거울을 보면 내가 정말 아시아인이거든요. 또는 우리가 병들고 죽었을 때 그토록 경멸해 마지 않던 수동성의 세계로 진입하는데 그때 여성하기, 짐승하기라는 핍진성의 세계로 들어가요. 그럴 때 우리는 알게 되죠. 우리는 끝끝내 짐승이고 여자이구나, 하는 것을요. 이 책은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그런 사유가 진행되는 지점들을 발견해보려고 한 거예요. 오은 : 여행하기와 시하기가 선생님께는 얼마나 유사한 것인지도 들려주세요. 김혜순 : 여행하기는 몸으로 하는 거고요. 시하기는 잔상을 가로지르는 거예요. 실제 장소를 썼어도 시에 나타난 것은 잔상이에요. 여행하기가 현재적이라면 시하기는 사후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바깥을 불러온다는 거예요. 우리의 바깥이 사실 시의 중심이거든요. 여행하기는 그곳을 실제로 가는 거고요. 그런 면에서 시차가 있지만 바깥이라는 넓은 중심에서 만나게 되는 게 비슷하죠. 저는 책을 통해 제 시론을 꺼내본 거고요. 그래서 이 책의 글들을 여행산문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 를 들고 벨기에의 안트워프를 갔는데 그 책이 굉장히 유용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여행기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그처럼 저도 이 책을 여행산문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냥 글쓰기에 관한 산문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오은 : ‘여자하기’를 “타자와 감응하여 작고 낮은 것을 몸에 분포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어요. <AXT> 인터뷰에서 “2015년까지 우리나라 여성시는 ‘여성’에 소홀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둑이 터지듯 ‘여성’이 호명되고 있지요.”라고도 하셨는데 연결해서 설명을 부탁드려요. 김혜순 : 우리나라 문학 역사에 오랜 기간 여성이 실종된 기간이 있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여자로서 문학을 한다고 하면 변방에 두고 거들떠보지 않던 기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성시를 따로 분류해서 작은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는 기간이 다시 도래할까봐 두렵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성주의분자생물학’을 주장하고 싶어요. 여성주의 이론의 난감한 점 중 하나가 반드시 여성이라는 거대한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것은 남성이 근대적 주체로 내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대문자 여성 말고 타자와 함께하는 환경이나 상호작용하는 작은 주체로서의 여성을 상정하는 시가 많이 생산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여성주의분자생물학이면 어떨까 하는 거예요. 작은 소수자로서 또 소수자와 연대하는 문학이고요. 작은 사람이 작은 감응을 다른 소수자에게서 발견해보는 것이 더 지속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은 : 말씀을 듣다 보니 ‘여자하기’나 ‘아시아하기’가 ‘변방하기’, ‘외부하기’, ‘타인하기’인 것 같아요. 또 관찰이 아니라 실제 행동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선생님, 지금 시인 김혜순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김혜순 : 이것은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 하는 질문인데요. 저는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고요. 당면한 과제들을 해치워요. <오은의 옹기종기>에 나와달라고 하면 이 과제를 해치우고 또 다음 과제를 하기 위해서 달려가죠. 그런 인생을 살아요. 여자들한테 “업적이 뭐야?” 하는데 업적 없어요. 가사노동처럼 닥쳐오는 아침밥을 하고 또 점심을 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살아왔거든요. 당면과제라면 최근에는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는 건데 못하고 있죠. 하여튼 뭘 해보겠다는 계획은 없어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에 공식질문이 있습니다.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은 어떤 책인지 묻는 질문이에요. 김혜순 : 한국에서 생산된 시집들을 권하고 싶어요. 무엇이든 말이에요. 한국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것이고 한국어 최대치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거든요. 또한 한국어 최대치의 변주와 실험이 있어요. 언어의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집을 읽으면 느끼게 되고, 자꾸 읽으면 더 큰 장소를 만나게 돼요. 오은 :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해보고 싶은 직업이 있으신가요? 김혜순 :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서 이렇게 대답했어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요. 그런데 더 대답을 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면 나는 뭘 할까. 낭비하면서 살고 싶어요. 인생을 낭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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